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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패천하 - 서기원 교장과 서윤복 선수
2. 족패천하 기념탑 건립과 이전
3. 숭문 재학 시절의 서윤복
4. 서윤복의 제자 송길윤(1950년 보스턴마라톤 2위)
5. 서윤복의 제자 이상철(1960년 로마올림픽 마라톤 대표)
6. 서윤복과 숭문육상부
7. 제1회 “자랑스러운 숭문인상” 서윤복
8. 서기원 교장 흉상 건립 추진
9. 김구 선생의 철혈정신-민족정기
10. 1993년 숭문가족의 밤
11. 보스턴마라톤 제패 50주년 기념식
12. 숭문동문회관 건립 추진
13. 모교 설립 100주년과 거북이마라톤대회
14. 서윤복 일대기 발간
15. 숭문의 명소 - 족패천하 기념탑
16. 숭문총동문회와 함께하다
17. 서윤복과 숭문 동문들
18. 서윤복을 알리는 숭문의 간행물들(1)
19. 서윤복을 알리는 숭문의 간행물들(2)
20. 서기추 사람들
21. 숭문과 제1회 서윤복마라톤대회 - 고문/자문위원들
22. 숭문과 제1회 서윤복마라톤대회 - 마라토너들


1. 두패천하 - 서기원 교장과 서윤복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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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복 선수는 1943년 경성상업실천학교(현 숭문고)를 졸업,
모교 서기원 교장과 해방 전후사를 함께 겪었다.
▲(위) 서윤복 선수는 1947년 5월 6일 워싱턴에서 “태극기가
우승에의 힘”이라는 제하의 편지를 서기원 교장에게 보냈다.
(조선일보 6월 4일)
▲(둘째) “저는 육상의 명문고를 만들겠으니 교장 선생님은
공부로써 명문고를 만드십시오.” 서윤복 선수는 1949년 9월
육상부 창단의 뜻을 밝히면서 서기원 교장 선생과의 대화를
회고했다.(<숭문 90년사> p.254) ▲(셋째) 숭문고 5회 정현화
동문과 6회 배진성 동문의 글. 서기원 교장은 1995년 족패천하
기념탑을 건립하며 “두패천하(頭覇天下)”의 뜻을 밝혔다고
전한다.(2005년 숭문 100주년 기념 문집 <추억 속의 상수> 중에서)
▲(아래) 숭문고 12회 이영환 동문의 글. 이 동문은 <추억 속의 상수>
속에서 ‘서기원 선생님과 서윤복 선수’의 남다른 사제의 정을 회고했다.

●태극기가 우승에의 힘 - 서 선수, 모교 서 교장에게 서한
지난 4월 19일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장하여 우승을 하고 그간
미주 각지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고 금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선편으로 귀국 도중에 있는 서윤복 선수로부터 지난 5월 6일
워싱턴에서 모교 숭문상업학교 교장 서기원 씨에게 부쳐온 편지가
도착되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서기원 교장 선생전. 열렬한 환영리에 용약 조국산천을 출발하여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처음 타본 비행기라 도중 멀미가
나고 보스턴에 도착한 후 대단히 피로하여 정신상 고통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회 당일인 19일 정오 12시 각국 대표 156명은 조국
체육의 흥망을 걸머지고 일로 결승점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출발 후 12마일에서 부터 20마일까지 접전. 18마일에서 선두로 나서자
난데없이 개가 나와 물려고 덤비는 것을 차다가 넘어져 왼편 무르팍을
상하여 핀란드 선수에게 선두를 빼앗겼습니다. 19마일에서는 최대
난관인 실망의 고개에서 핀란드 대 조선의 접전이 또 다시 전개되자
저는 약 1마일을 전 속도를 다 발휘하여 최후 결승점에서는 약 4분을
앞섰습니다. 과거 손기정, 남승룡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뛰었던 것을
이번에는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떳떳하게 조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었습니다.
워싱턴에서 5월 6일 / 조선일보 1947. 6. 4.


2. 족패천하 기념탑 건립과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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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건립된 족패천하 기념탑은 1991년 숭문총동문회의 결의로
안내판을 설치했으며, 2006년 숭문 100주년을 맞아
교문 앞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위) 1954년 숭문 교정에 서윤복 선수 기념탑이 세워질 예정이라는내용의
기사(경향신문 1954. 11. 8)과 이전 전후 기념탑 사진.
오른쪽 위는 기념탑 앞에 선 서윤복 선수.
▲(가운데) 1991년 숭문총동문회의 ‘안내판 설치’ 취지의 글. 1955년 5월
8일 건립시 유진오 박사(당시 고려대 총장)을 비롯하여
민병권, 서상국 한춘교, 황규삼 동문 등이 수고했으며, 김구 선생 휘호의 분실과
서기원 교장의 글씨, 유희열 교사의 작성 등에 대해 적고 있다.
▲(아래) 2006년 족패천하 기념탑 이전 시 서윤복 선수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는 동문과 가족들.


3. 숭문 재학 시절의 서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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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문(당시 경성상업실천학교) 재학 시절의 서윤복 선수
▲(위) 1940년 경춘역전경주 원정 기념
▲(둘째) 1941년 9월 퇴계원에서
▲(셋째) 장충공원에서
▲(아래) 1942년 경성상업실천학교 육상부 송별 기념. 위 왼쪽부터 조용태,
이해선, 남창우, 서윤복, 이건창, 최봉수.


4. 서윤복의 제자 송길윤(1950년 보스턴마라톤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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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보스턴마라톤대회 1, 2, 3위를 휩쓸었던 한국 선수 3인방 중 2위
송길윤(1927~2000) 선수는 서윤복 선수의 으뜸 제자였다. 그는
군산상고에서 스카웃, 서윤복 선수를 스승으로 모시며 숭문과 인연을
쌓았다. 또한 그는 “김치”를 전 세계에 알린 첫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첫째) 송길윤 선수의 보스턴마라톤 출전을 응원하는 숭문 중학교(좌상)와
우승 후 서윤복 선수와 1950년 보스턴마라톤 3인방(좌하), 송길윤 선수를
환영하는 숭문육상부와 교사들
▲(둘째부터 넷째까지) 2시간 35분 58초 - 제54회 보스턴마라톤 2위로 골인한
송길윤 선수의 소식을 전하는 당시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기사들.
서기원 교장은 “국민의 영광”이라고 환호했으며, 서윤복 선수는 “꼭 믿었다!
불멸의 금자탑”이라고 말했다.
▲(아래) “송길윤은 보스턴헤럴드 등과의 인터뷰에서 우승의 비결은 바로
김치였다고 말해” 송 선수가 K-푸드를 알렸던 최초의 인물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전북일보 2006년 6월 30일자 기사.


5. 서윤복의 제자 이상철(1960년 로마올림픽 마라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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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995년경부역전마라톤제1회대회출전자-왼쪽부터임종우양재성한승철이상철(한국일보2014111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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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윤 선수가 보스턴마라톤(1950년)의 길을 달렸다면, 이상철(1935~2018)
선수는 로마올림픽 마라톤(1960년)의 길을 달린 제자였다.
▲(위) 로마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한 송삼섭(숭문고 2회)과 이상철(숭문고 7회)
선수. 아쉽게도 현지 사정으로 송 선수는 기권하고, 이 선수는 34위를 기록했다.
▲(가운데) 우리나라 마라톤의 산 증인들. 왼쪽부터 임종우(1957년 보스턴
마라톤 3위), 양재성(선수 겸 육상경기 해설가), 한승철(1958년 도쿄아시안게임
5,000m 2위), 이상철.
▲(아래) “작은 거인 이상철 선수” - <숭문 90년사>(pp. 261~264)에 이 선수
일대기가 짧게 요약되어 있다.


6. 서윤복과 숭문육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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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복 선수는 1949년 9월 서기원 교장의 부름을 받아 숭문육상부를 창립,
1961년 3월 서울운동장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13년간 모교에서 육상선수
지도에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수많은 제자를 낳았다.
▲(위) 숭문육상부 창단 경과를 알려주는 <숭문 90년사>(pp. 253~254)
▲<숭문 90년사>에 실린 숭문의 건각들과 우승트로피 화보
▲(셋째부터 여섯째까지) 육상부 제자들과 함께한 서윤복 선수. 여섯째 오른쪽은
2001년 11월 족패천하 기념탑을 찾은 숭육회(숭문육상부 출신 모임)
▲(아래)


7. 제1회 “자랑스러운 숭문인상” 서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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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복 선수의 모교인 숭문중고등학교 총동문회에서는 1988년부터
‘모교와 동문회를 빛낸 동문을 선정하여 해마다 “자랑스러운 숭문인상”을
표창, 서 선수가 첫 수상자였다.
▲위 사진은 서윤복 선수의 “자랑스러운 숭문인상” 선정을 알리는 <숭문
90년사>의 내용. 서 선수의 학력과 경력, 수상 경력 등을 보여주고 있다.


8. 서기원 교장 흉상 건립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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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복 선수는 1990~1991년 모교 서기원 교장의 흉상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장을 맡아 헌신했다.
▲(위) 숭문중고등학교 서기원 교장의 흉상
▲(둘째) 숭문총동문회 산하 ‘흉상건립추진위’의 기구표. 당시 총동문회장은
서윤복 선수의 졸업 동기인 이찬혁 동문이 맡았고, 방일영(동방문화학원
이사장 겸 조선일보 회장), 민병권(전 교통부장관), 유충열(인천광성고교장),
유기준(국회의원) 동문 등이 고문으로 참여했다.
▲(셋째) “교육은 국가와 민족의 역사적 대과업이며, 혼탁한 사회를 정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 - 고 서기원 교장 흉상 건립 취지문. 숭문총동문회장 겸
흉상건립추진위원장 이찬혁 동문과 집행위원장 서윤복 동문이 작성했다.
▲(넷째) 흉상건립 추진위원장에 서윤복 동문을 선정했음을 알리는 1990년
1월 <숭문동문회보>
▲(다섯째) 1991년 5월 15일 개교 기념일을 맞아 서기원 흉상 건립 경과
보고를 하는 서윤복 동문
▲(아래) 서기원 흉상 앞에서 테이프 커팅을 하는 동문들


9. 김구 선생의 철혈정신-민족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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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은 서윤복 선수의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족패천하 외에도 여러
개의 글씨를 썼다. 위는 박명환(숭문중 17회, 국회의원) 동문이 모교에
기증한 김구 선생의 글씨.
▲숭문동문회보 제14호(1993년 11월호, 7면)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백범의 민족혼이 서려 있는 웅건한 서법 - 위의 사진은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휘호로서, 당시 민족자존이 걸렸던 신탁통치반대운동과 1947년 보스턴마라톤
대회에서 우승 후 개선한 서윤복 동문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부재가 병서되어
있다. 특히 기교 없는 웅건한 필체에는 鐵血情神으로 民族正氣를 세우려 했던
민족지도자 백범 선생의 의지가 서려 있다.(이 휘호는 국회의원 박명환(중 17회)
동문이 모교에 기증한 것으로 현재 모교 서무과에 보관되어 있다.)


10. 1993년 숭문가족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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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숭문가족의 밤”에 참석한 서윤복 선수
▲ 서윤복 선수는 해마다 숭문총동문회의 연례행사인 “숭문가족의 밤”에
참석, 모교의 역사 속에서 코리아의 역사를 심어주며 동문-교사들과 새해를
맞이했다.


11. 보스턴마라톤 제패 50주년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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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문총동문회(회장 장영수)는 1997년 4월 8일 서윤복 선수의 보스턴마라톤
50주년 재패 기념식을 가졌다.
▲(위 & 가운데) 서울 힐튼호텔 2층 남산룸에서의 축하연
▲(아래) 숭문총동문회 고문 및 회장단에게 정기총회와 서기원기념관 건립
관련과 더불어 보스턴마라톤 제패 50주년 축하연을 알리는 문서


12. 숭문동문회관 건립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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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복 선수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중고교 동문회관 중 하나인
‘숭문동문회관’의 건립에도 참여, 뜻 깊은 개관 테이프커팅 식을 가졌다.
▲2001년 5월 서울 마포구 독막로 264에 건립된 숭문동문회관 앞에 모인
원로 동문화 모교 교사들


13. 모교 설립 100주년과 거북이마라톤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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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서윤복 선수의 모교(현 숭문고, 당시 경성상업실천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의 해. 서 선수는 ‘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추진된
서기원기념관 건립을 위해 ‘건립추진위’ 고문직을 맡으며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교의 발전과 서기원 교장 추모활동을 계속했다.
▲(위) 서기원기념관 건립추진위 기구표. 방일영 재단 이사장을 비롯하여
류충열, 이근영, 이찬혁, 김승호 동문과 함께 고문단을 구성했다. 당시
명예위원장은 서연호, 추진본부장은 김준열, 추진본부장은 박홍섭 동문.
▲ (아래) 숭문 개교 100주년을 알리는 팸플릿. 서윤복 선수의 보스턴마라톤
골인 장면을 메인 이미지로 썼다. 기념식 8일 전인 4월 30일에는 모교 운동장을
점으로 시내를 돌아오는 거북이마라톤대회가 성황리에 치러지기도 했다.


14. 서윤복 일대기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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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서윤복 일대기> 소장본이 발간, 숭문가족의 밤 때 일반에
공개되고, 4월과 8월 보급판과 홍보판(한글-영문-중문)이 연이어 발간돼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위) 유가족에게 <서윤복 일대기> 소장본 헌정을 알리는 2014년
숭문가족의 밤 팸플릿
▲(둘째) <서윤복 일대기> 소장본 설명 자료
▲(셋째) 숭문가족의 밤 행사장에 전시된 <서윤복 일대기> 소장본
▲(아래) <서윤복 일대기>의 보급판(왼쪽)과 홍보판 표지


15. 숭문의 명소 - 족패천하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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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패천하 기념탑은 숭문육상부의 우승 전적을 기념하는 자리였을 뿐만
아니라 숭문 학생들이 졸업하며 뜻있는 대학과 사회생활을 기원하는 숭문의
명소였다.
▲(위) 이전 전후 족패천하 기념탑과 안내문. 우상은 숭문의 교사였던 이길용
화백의 그림
▲(아래) 숭문의 졸업식 날 족패천하 기념탑은 학창생활을 기억하려는 졸업생이
가장 즐겨 찾는 포토존이었다. 기념탑의 보존을 위해 근거리 촬영 금지.


16. 숭문총동문회와 함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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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복은 명선수, 명감독, 명해설가, 명관리자, 명강사였을 뿐만 아니라,
숭문총동문회의 내로라하는 리더이자 일꾼이었다.
▲(위) 서윤복 선수는 숭문총동문회의 부회장, 감사, <숭문 90년사>
편집위원, 서기원흉상건립위원회 집행위원장을 지냈으며
▲(가운데) 총동문회 고문과 서기원기념관건립추진위 고문, 숭문 설립100
주년 기념행사 추진본부장을 지냈다.
▲(아래) 2014년 서윤복 선수가 노환으로 요양을 하기 직전 숭문총동문회
고문단의 기구표


17. 서윤복과 숭문 동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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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복 선수를 사랑하는 숭문 동문들
▲(위) 1982년 서윤복 선수와 함께 북한산에 오른 숭산회(숭문산악회)
회원들과 가족
▲(둘째) 1991년 숭문가족의 밤 때 2부 이상벽(숭문고 14회, 방송인) 동문의
사회로 단상에 올라온 서윤복 동문. 이날 ‘비내리는 고모령’을 멋들어지게 불러
많은 박수를 받았다.(1991년 2월 <숭문동문> 제3호 4면)
▲(셋째) 1997년 11월 1일 서윤복 동문과 함께 강원도 바다를 찾은 숭산회
회원들과 가족
▲(아래) 2011년 서윤복 동문 자택을 방문한 숭문고 12회 동문들. 왼쪽부터
김현권, 전옥현, 서윤복, 정재걸, 이영환 동문.


18. 서윤복을 알리는 숭문의 간행물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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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복 선수를 알리는 숭문 교지와 회보, 책자들(1)
① 1954년 10월 초등학교 육상대회를 알리는 <숭문 90년사>(1993년 간행)
- 1957년 초등학교 육상대회에서 시상하는 서기원 교장. 서윤복 선수는
서기원 교장과 함께 육상 저변 확대의 꿈을 펼쳤다. 다음은 서 선수의 회고.
“1회 대회는 2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한 초라한 대회였지요. 그러나 이에
실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찾아다니며 설득과 이해를 시킴으로써 회수가
거듭될수록 참가교가 늘어나더군요.” 1960년 제7회 대회 때는 14개교
180여 명의 초등학생 참가했다고 <숭문타임즈>는 적고 있다.
② 1955년 숭문 교지 창간호. ‘보스턴의 추억’이라는 서윤복 선수의 글을
싣고 있다. 이 글은 1984년 2월 숭문 교지 10호. 교지 창간호에 실린 서윤복
선수의 ‘보스턴의 추억’을 특집(숭문의 얼굴들)으로 재수록됐다.
③ 1959년 2월 숭문 교지 4호. 서윤복 감독의 제자인 정재걸 선수가 고3
시절 ‘숭문과 육상부와 나’라는 글을 실었다.
④ 1962년 12월 숭문 교지 6호. 서윤복 동문을 모시고 숭문육상의 선배들이
좌담회를 가졌다.
⑤ 서윤복(스승)-이상철(제자) 감독과 숭문육상부 선수들 - 1933년 <숭문동문>
제14호.
⑥ 1970년 숭문 교지.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숭문 육상 30년사를
정리했다.
⑦ 1983년 서윤복 선수의 회갑연 - <토요수련회보> 제10호. 2월 19일 숭문육상부
제자들 포함 200여 하객들이 모였다.
⑧ 1984년 2월 숭문 교지 10호. 1981년 한국경제신문사가 펴낸 <잊을 수 없는 사람>
중 ‘보스턴 영광의 은인 스미들리 여사’란 회고록을 재수록했다. 당시 35, 6세 이던
스미들리 여사는 미군정청 체육과장으로 서윤복 선수 일행의 보스턴마라톤대회
참가를 위해 미군들로부터 600불의 모금을 해주었다.
⑨ 1988년 숭문총동문회 회장단 기념 식수 장면을 화보로 전하는 <숭문 90년사>
⑩ 서기원 교장 흉상 건립 추진위 소식 전하는 <숭문동문> 1990년 1월호. 서윤복
동문은 추진위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⑪ 1991년 <숭문동문> 제3호. 이상벽 동문의 사회로 진행된 숭문가족의 밤 2부
순서에서 서윤복 동문은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불렀다.
⑫ 1991년 4월 <숭문동문> 제4호. ‘재학생 인재 배출, 옛 숭문 명성 되찾아야’라는
대담 기사가 실렸다. 서윤복 동문은 우승 후 43일 간의 미국 순회를 마치고 귀국하자
국민들이 집집마다 30원씩을 걷어 총 1,800만원이 모금되었는데, 당시 서울 가회동
집이 한 채에 30만원이었음을 회고했다. 대담: 박홍섭(숭문고 10회), 정리: 한창희
(숭문고 29회).
⑬ 1991년 10월 서기원 흉상 건립 경과보고를 하는 서윤복 집행위원장 -
<숭문 90년사>
⑭ 1992년 12월 숭문총동문회 자료. 서윤복 동문 고희연 개최.
⑮ 1993년 2월 숭문가족의 밤 행사에 참석한 서윤복 동문 - 2005년 <숭문회보>
59호
⑯ 1993년 4월 숭문총동문회 자료. 서윤복 동문, 제96회 보스턴마라톤대회 초청으로
출국.


19. 서윤복을 알리는 숭문의 간행물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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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복 선수를 알리는 숭문 교지와 회보, 책자들(2)
①② <숭문동문> 제14호. 50대 서윤복 동문의 근황을 전하며, 1947년
4월 25일 제임스 H. 메리라는 20세 여성이 조선일보를 통해 보내온 ‘서
선수에 순정의 연문’을 함께 실었다.
③ 1993년 간행 <숭문 90년사> 143쪽부터 154쪽까지 서윤복 동문의 학창
시절부터 보스턴마라톤 우승과 개선에 이르기까지 ‘서윤복의 족패천하’를
실었다.
④ 2001년 <숭문회보> 49호. 5월 26일 숭문회관 준공식. 서윤복 동문은
당시 숭문총동문회 이근영 회장과 졸업 동기로, 동문회관 준공의 숨은 주역
이었다.
⑤ 1993년 7월 <숭문동문> 제14호. 박명환(숭문중 17회) 동문이 “철혈정신”
“민족정기”라는 김구 선생의 글씨가 표구된 액자 2점을 공개했다.
⑥ 1994년 5월 <숭문회보>. 서윤복 동문의 보스턴마라톤 50주년 재패
기념식 개최.
⑦ 2004년 <숭문회보> 가을호. “그때 그 시절” 특집으로 서윤복 선수의
우승과 육상부 감독 시절을 화보로 다뤘다.
⑧⑨ 2005년 <숭문회보> 봄호는 서윤복 동문을 표지 사진으로 올리며,
‘멋진 동문’ 소개 등 서 선수 특집으로 간행됐다.
⑩⑪ 2006년 <숭문회보> 겨울호는 숭문 개교 100주년 기념 특집으로 간행,
언론에서 본 숭문에 ‘숭문육상부’의 활약상이 오르고, 숭문 10대 사건에
‘서윤복 보스턴마라톤 우승’, 숭문 10대 심볼에 ‘족패천하 기념탑’이 올랐다.
⑫ 2007년 간행 <숭문 100년사>. 서윤복 동문이 추진본부장을 맡고 있는
서기원기념관 건립추진위 기구표를 담고 있다.
⑬ 2012년 <숭문회보> 신년호. 이상철, 정재걸, 김학균, 박수관 등 숭문육상부
제자들이 서윤복 동문 자택을 방문 서 선수 부부를 위로했다. 15장의 사진
화보 게재.
⑭ 2013년 <숭문회보> 가을호는 Aim High라는 주제 하에 감격의 1947년
4월 19일을 화보 형식으로 다루며, 서윤복 동문이 우승 직후 서기원 교장에게
보냈던 서한을 공개했다.
⑮ 2014년 신년호는 Global Soongmoon 특집. 서윤복 동문을 “미 군정
치하 조선의 IOC 가입과 독립국가 약진의 전기를 마련한 인물”로 소개했다. 
⑯ 2014년 1월 숭문가족의 밤 때 서윤복 동문의 유가족에게 서윤복 일대기
소장본이 전달되고, 5월 보급판과 홍보판이 추가로 간행됐다. - <숭문회보>
87호


20. 서기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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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추(서윤복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2024년 6월 19일 숭문총동문회
고문자문단회의와 20일 운영위원회 의결을 거쳐 김승호 고문(원로그룹
대표)과 오천진 총동문회장(실무그룹 대표)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총동문회
산하 기구로 조직되었다.
▲(위) 2024년 2월 6일 송대섭(21회,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화가의
판화 제작 피드백 위한 7차 미팅
▲(둘째) 2024년 10월 12일 서윤복길 명판 제막식
▲(셋째) 2024년 10월 12일 화운기념관에서 열린 중장기 서윤복기념사업
설명회
▲(넷째) 2024년 11월 20일 제1회 서윤복마라톤대회 개최를 위한 서기추-
마포구청-대한생활체육협회 실무대표자 첫 미팅 
▲(다섯째) 2025년 1월 4일 제1회 서윤복마라톤대회 개최 위한 3기관
실무대표 신년 미팅
▲(여섯째) 2025년 1월 14일 숭문총동문회로부터 단체공로상을 받는
서기추 정하만 대표 위원
▲(아래) 2025년 3월 11일 송대섭 화백의 파주 작업장에 모여 제1회
서윤복마라톤대회 개최 의지를 다지는 서기추 위원들


21. 숭문과 제1회 서윤복마라톤대회 - 고문/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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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서윤복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을 축하-격려하기 위해 모인
숭문총동문회와 마포구청-마포구의회의 귀빈들
▲(위) 마라톤 개최 직전 평화광장에 마련된 무대 위에 올라 인사하는
내외 귀빈들
▲(아래) 스타트라인 부근에 세워진 출발 단상에서 참가 선수들을 응원하는
VIP들


22. 숭문과 제1회 서윤복마라톤대회 - 마라토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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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서윤복마라톤대회 종료 직후 SNS에 올라온 사진들
▲(위) 우리는 숭문인이다 - 대회에 참석한 동문과 재학생들
▲(둘째) 마라톤 완주 후 손에 쥔 기념메달들
▲(셋째) 참가 선수들의 질주와 골인 장면
▲(아래) 서삼종(숭문고 37회) 서양화가가 디자인한 삼각기둥 포토존은 대회
참가자들의 기념사진 촬영 장소로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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